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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 실제 인물 줄거리 역사와의 비교 총평

by 루크얌 2024. 5. 7.

서울의 봄

영화는 2023년 11월 22일에 개봉된 드라마 장르의 작품으로 1979년 12월 12일에 발발한 12.12 군사반란을 주요 소재로 제작되었다. 이 글은 영화 속 등장인물, 줄거리, 총평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영화 속 실제 인물 이야기

정상호의 인물인 정승화 참모총장은 12.12 군사반란 이후 날조된 죄목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무려 참모총장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되었다. 1981년 3월 사면, 복권되었지만 1993년 12.12 사태의 주범들을 검찰에 고발을 당해 1997년 재심으로 무죄판결받았다. 1999년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장 역임을 하였다. 이후 2002년 항년 7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이태신의 인물인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12.12 군사반란 진압 실패 후 보안사령부에 체포되어 서빙고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와 고문을 받은 이후 가택연금을 당하며 이등병으로 강등되었다. 1982년 서울대 자연대에 수석입학 한 아들은 같은 해 4월 낙동강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지만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2010년 별세하였다. 공수혁의 인물인 정병주 특전사령부 사령관은 12.12 군사반란 진압 도중 부하에게 총격당하며 부상을 입은 이후 1980년 소장으로 강제 예편당했다. 12.12 군사반란 주범이 언론에 이를 미화하는 발언이 나오자 격분하며 군사반란의 위범성을 주장하였지만, 1988년 10월 실종되었다. 1989년 3월 고양시의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어서 현재는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서울의 봄 줄거리

영화는 12.12 군사반란을 주제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1979년 10월 26일 밤 정부 고위관계자, 구도권 및 전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육군본부로 모두 모여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 속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전달된다. 일시 묵념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함과 동시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다. 계엄범에 따라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이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자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대통령 경호실 및 중앙정보부의 공백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전두광은 대한민국 내 모든 정보를 독점하게 되면서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이후 권력을 남용하며 비리를 저지르는 전두광의 행보를 주시하던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서 하나회를 향해 경고를 하거나 좌천을 시키는 등 억누르려 애를 써보지만 실패하게 된다. 자신을 막으려는 정상호에게 악의를 품고 끌어내기 위해 전두광은 자신의 친구 노태건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게 된다. 이후 전두광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인원을 모아 준비를 하게 되지만 이를 눈치챈 정상호는 이태신에게 직접 불러서 제안하고 간청 끝에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위임시킨다. 이태신은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위임되자 하나회에 소속된 인물들을 조사하며 세력을 파악하였고, 자신의 힘이 되어줄 인물들을 확인한다. 계속되는 신경전 끝에 반란의 준비가 된 하나회 일당들은 국무총리 공관에서는 대통령 재가를,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는 정상호 총장을 납치하는 계획으로 작전명 '생일잔치'를 실행한다. 12월 12일 계획의 시작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육군 헌병감 김준엽을 연회에 초대해 자리를 비우게 하는 것이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태신은 가지 않으려 무시했으나, 계속되는 요청에 결국 세 명이 같은 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 사이 전두광은 정상호 총장 납치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잠시 대통령직에 임하고 있는 최한규 대통령을 독대하여 정상호 총장 구속에 대한 재가를 받으려 한다. 그러나 최한규 대통령이 재가에 대한 답을 쉽게 내놓지 않았을뿐더러 모여있던 세 사람이 총장 납치 보고를 받게 되자 오히려 전두광이 붙잡힐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계획이 틀어지자 전두광은 자신의 부하에게 탈출하라는 명령과 함께 하나회가 있는 30 경비단으로 가도록 지시한다. 이후 작전본부로 돌아온 전두광은 재가를 받지 못한 사실과 함께 군대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태신과 전두광은 자신의 위치에서 부를 수 있는 모든 군을 모아 전투태세에 돌입하였지만, 전두광의 말에 속아 육군본부는 탈취당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태신은 격분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전 병력을 동원해 총출동한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대치하게 된 이태신과 전두광이었으나, 잡혀있던 국방부장관에 의해 이태신은 제지당함과 동시에 관직이 박탈당하게 된다. 결국 이태신은 지게 되고, 전두광은 정권을 잡으며 반란에 성공하게 된다. 최한규는 군인들을 몰고 들어온 전두광에게 어쩔 수 없이 재가 안에 사인하게 되며 12월 12일의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게 되며 반란에 도모한 이들의 사진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실제 역사와의 비교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의 헌병특별경호대 병력을 제압하는 부대가 수경사 병비단으로 나오다. 실제로는 하나회 소속인 청와대 경호실 병력이 출동하여 무장해제시켰다. 또한,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달리 청와대 경호실 병력과 경호실장 대리 정동호 준장은 공관 안에 상주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노태우가 경호실에 전화를 걸어 하나회였던 고명승에게 지시를 내려 있었던 일로, 노태우가 12.12 사태에서 이인자 자리를 굳히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 전두광이 국무총리 공관으로 정 총장 체포 재가를 받으러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가려 할 때, 육군본부 측의 연락을 받은 경비 병력에 의해 체포될 뻔하다가 간발의 차이로 탈출한다. 김진기 헌병감이 국무총리 공관으로 전화를 걸어서 전두환의 소재를 파악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즉시 체포 명령은 내리지 않았고 대기 명령만 내렸다. 정승화 총장을 연행한 주체가 확실하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즉각 체포 명령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전두환은 총리공관을 빠져나갔고, 헌병특별경호대는 하나회의 병력에 의하여 무장해제 당한다. 전화가 걸려올 당시 하나회 일원인 경호실 작전담당관 고명승 대령이 이미 헌병대 무장해제를 위한 병력을 이끌고 온 상태였다. 이태신이 행주대교를 홀로 막아서 서울로 진격하던 2 공수여단 병력을 돌려보내다. 1 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와 육군본부의 지시를 무시하지 않고 중도에 회군한 뒤, 박희도 여단장이 오면서 다시 출동했다. 다만 '출동하는 전차병력을 혈혈단신으로 막아서는 지휘관의 모습'의 모티브는 장태완과 대립하던 반란군 소속이었던 김진영 수경사 33 경비단장의 일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12.12 당시 하나회의 김진영은 장태완의 명령으로 반란군 진압을 위해 수경사로 집결하는 33 경비단 전차중대를 몸으로 막아내고 말로 설득하여 원대복귀하게 했다.

총평

2024년 5월 7일 기준상 한국 네이버 평가 점수는 실관람객 평점 9.5점, 네티즌 평점 9.5점대로 확인된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실존 인물의 캐릭터를 똑같이 재현하는 데 많은 초점을 둔 것이 아닌 배우들 특유의 개성을 살려 오히려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에 대한 몰입감과 설득력을 높였다는 호평과 캐릭터성이 흥미롭게 연출되었다는 평가들을 남겼다. 2024년 5월 7일 기준상 해외평가에서는 IMDb 평점 7.7점대로 확인된다. 평가는 매우 높은 것으로 전 세계 영화사이트 중 압도적 트래픽 유저 수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 내 역사적으로 충분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봄'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탓에 결론이 정해져 있어 가슴 아픈 이야기를 고스란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어 관객들의 감정들을 끌어올렸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있어 올바르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으며, 지금껏 다양한 역사적 배경의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개봉하였지만 영화 서울의 봄 같이 배우들의 몰입도가 높은 영화는 아직 없다고 생각된다.